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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BOOK

작성자 사진Sico H

1. 무료한 하루, 화려한 등장


  • 자캐 드림 - 10년 후 벨페고르 드림

  • 원작 완결 기준으로부터 10년 뒤, 평화로운 마피아 세계의 배경. 10대 본고레 보스가 사와다 츠나요시라는 설정.




  이곳은 바리아의 한가로운 오후, 선선한 바람이 부는 3월의 봄이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벨은 스쿠알로의 “할 짓 없으면 서류라도 좀 도와!”라는 말을 무시한 채 바리아 간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도망쳐 나와 성의 복도를 배회하고 있었다. “왕자는 그런 천민들이나 하는 잡일은 하지 않아”라는 말은 덤으로 남겨 스쿠알로의 열을 잔뜩 올리고 낄낄 웃으며 농땡이를 치우러 나온 것이었다. 지나가는 부하 놈 한 명 걸리면 괴롭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오늘의 타겟을 찾던 도중, 벨은 처음 보는 낯선 누군가가 복도에서 어수선하게 두리번거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낡고 꼬질꼬하고 몸 전체를 가리는 검은 전투 슈트를 걸친, 누가 봐도 ‘침입자’로 보이는 수상한 인물. 조금 특이점이 있다면 체격이 상당히 아담하다는 거? 벨은 처음에는 마몬이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걸까 싶었지만, 역시 저 어수선한 행동은 마몬이 할 법한 행동은 아니었다. 벨이 뚜벅뚜벅 걸어가며 그 수상한 인물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 겁도 없이 바리아에 침입한 녀석은 처음인데, 이시싯”


  간단한 물음이었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벨의 냉정함과 살의가 묻어나온다. 갑작스러운 날 선 목소리에 수상한 인물이 벨을 향해 돌아본다.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슈트의 후드 모자를 걷어들며 벨의 얼굴을 확인하는 듯 고개를 까딱이더니, 그 속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소녀의 목소리가 우렁찬 외침으로 튀어나왔다.


“찾았다!”


  바리아에서는 평소에는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이질적인 경쾌한 목소리에 벨은 경계와 시선이 날카로워지지만 또 흥미로운 기분도 들어 고개를 갸웃한다.


  “정체부터 밝혀, 침입자 천민.”


벨의 호기심과 위협이 가득한 대답에 이내 수상한 소녀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후드를 벗고 모습을 드러낸다. 갈색 머리에 갈색 눈, 조금 앳되고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위협적이지는 않은 평범한 얼굴의 소녀는 벨에게 당당하게 반짝이는 눈으로 외친다.


“벨페고르, 절 후배로 받아주세요!”


  벨은 후배라는 단어에 순간 어떤 개구리가 뇌속에서 스쳐지나가 얼굴을 잠깐 찡그린다. 그러나 곧 이 엉뚱한 상황에 재미를 느끼면 금방 입꼬리가 다시 올라간다.

“후배? 그런 짜증나는건 필요없어. 왕자는 사람한테 관심도 없고. 게다가 실력도 없어보이는데… 어떻게 여길 찾아 온거야? 시싯”


벨이 소녀를 얕보자 소녀가 벨의 말에 잠시 곰곰히 고민하다 대답한다.


  “환술 벽으로 막혀있길래 알아챘어요! 바리아에 입단하고 싶습니다!”

  이 바보같이 보이는 소녀가 마몬과 프랑의 환술을 간파했다고? 꽤 놀라운 정보에 벨은 고개를 살짝 들어 소녀를 똑바로 응시한다. 확실히 이 세계는 겉모습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곱씹으며, 낭랑하게 바리아에 입단하고 싶다고 외치는 이 소녀와의 전투를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 해본다.


  “그렇게 들어오고 싶은거야? 우린 오직 실력만 보고 스카웃하는건 알고 왔지? 그러니까 내말은 - ”

  

  벨이 은빛의 나이프를 손으로 펼치며 웃어보인다.


  “살아남으면 네가 원하는대로, 그게 아니면 시체로 나가게 된다는 거야. 이시싯”


  그러나 이런 벨의 위협에도 소녀는 두려운 기색도 없이 오히려 벨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볼을 붉히는 등 전혀 엉뚱하고 이상한 반응을 보이며 중얼거린다.


“확실해… 지금도 내 심장이 두근두근거리잖아!”


  소녀의 중얼거림을 비웃은 벨은 지루하던 하루에 헤프닝이라는 활력을 찾은듯 당장이라도 저 꼬마를 찢어죽이고 싶은 흥분된 마음을 겨우 다스리며 공격의 타이밍을 잰다. 뭐, 고양이도 쥐를 보자마자 죽이진 않잖아?라는 생각처럼 말이다.


  “약해보이는데, 도망치지 않는걸 보니 보기보단 자신이 있나보지? 그 멍청한 얼굴도 곧 일그러질텐데 목숨 구걸이나 해, 천민. 비명도 질러주면 좋고 이시시…”


  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녀를 향해 날카로운 나이프들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간다. 찰나의 순간, 개방된 복도 옆으로 총성이 울리며 날아오는 나이프들이 모두 저격되더니, 나이프와 총알이 모두 벽으로 꺾여 깨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벨의 모든 공격이 무효화 된다.


  “우와. 역시 공격받을 걸 미리 준비해둬서 다행이에요.”


  오- 벨은 이 순간적인 상황에 바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여자, 정말로 입단하고 싶어서 찾아왔나 본데? 하는 생각. 그도 그럴 게 총의 존재를 벨은 처음에 눈치채지 못했다. 다른 말로 하면, 충분히 방금 자신의 나이프가 아니라 머리를 노릴 수도 있었다는 얘기. 게다가 날아오는 나이프를 저격한다고? 아무리 제가 상대를 무시해서 정직하게 던졌어도, 상대는 저격으로는 실력이 있는 게 확실했다. 20년 가까이 되는 히트맨의 삶에서 상대의 전력을 빠르게 파악하는 건 기본 소양이니까, 그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벨이 옆으로 시선을 흘리면 수풀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들이 올라온다. 무기형 박스병긴가 싶었지만, 연기의 본체에 집중해 보면, 벌들의 군집이 저격총을 다수 들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소녀가 벨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재밌네 시싯, 하지만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그렇지, 이런식으로 들어오면 침입자로밖에 인식 못 한다구?”

  “그렇치만 최근 바리아는 스카웃하러 다니지도 않는걸요? 나 저 밖에서 엄청 설레면서 기다렸는데…”

  “그야 요즘은 본고레 보스 때문에 정세가 안정됐으니까, 많은 인원이 굳이 필요가 없나보지, 이시시...”

  

  그나저나 최근 유망세 킬러들 중에 저격수가 있었나? 잠시 머릿속의 프리랜서 킬러들에 대한 소문의 기억을 끄집어 내면…뭐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왕자는 정치에는 관심 없어서 모르겠는 걸~”

  “…왕자면 정치에 더 관심 가져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진짜 왕자는 지루한 일은 하지 않아!”


  일단은 상대가 적의가 전혀 없다는 건 인지했으니, 입단문제야 스쿠알로한테 보내면 그만이라는 생각과 함께 벨은 이 꼬마를 어떻게 하면 재밌게 괴롭히고 놀릴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본다.


  “맞아요! 저 바리아에 들어오려고.. 5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7개 국어 마스터도 하려고 엄청 고생했다구요!”

  

소녀는 주섬주섬 꾸깃꾸깃한 종이들을 꺼낸다.


  “근데 제가 신분때문에 자격증을 딸 수가 없는데 어떻게 증명하죠!?”

  “자격증이라니, 어차피 몇 번 대화하면 알 수 있는데 굳이 필요 없을걸?”

  “…아하!”

  “그냥 바보 천민인가…”


  참 알 수 없는 소녀라는 생각이 드는 벨이었다. 외모로는 일반인 여성보다도 약해 보이는데, 겁도 전혀 없는 데다 무기는 가장 폭력적이고 폭발적인 총기류라니. 어쩌면 재밌는 녀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며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해 보면…역시 아까 소녀의 깔끔한 방어가 잊힐 정도로 빈약하고 어설퍼 보이는 태도를 가진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일단 왕자한테 물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그렇게 입단하고 싶으면 스쿠알로한테 가보지 그래?”

  “바리아의 2인자, 스페르비 스쿠알로씨…맞죠?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저쪽-”

  벨이 소녀에게 스쿠알로의 집무실 방향을 가리켜주면 소녀는 벨에게 미소와 함께 꾸벅 인사를 하고 “나중에 봐요~! 벨페고르 선배!”하고 떠나간다. 선배라니, 아직 바리아 대원도 아니면서 벌써 설레발치는 꼬맹이군 싶은 벨은 아마도 그녀가 스쿠알로 선에서 정리될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전혀 착각이었다. 그날 바리아의 오후는 완전히 개판이 났다.

  

  “우오이!!! 마음에 들었다!!! 스카웃하지!”

  

  이럴수가. 스쿠알로 마음에 드는 경우는 흔치 않지 않나? 벨은 이 광경에 꽤 놀랐다. 잔저스급이나, 루키 멤버로 들어왔던 벨 자신이나 프랑 정도를 제외하곤 첫인상부터 잡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 소녀는 아주 오랜만에 스쿠알로의 전투 심장을 뛰게 만들어버렸다.


  “우와아! 대장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별이라도 쏘는 듯 반짝이는 눈으로 충성하는 꼬맹이라니, 정말 웃기다.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그냥 간단하다. 스쿠알로가 입단을 원한다면 전력으로 싸워보라고 했고, 결과적으로는 이 소녀의 굉장한 실력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스쿠알로의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바로-


  “너, 살인에 전혀 두려움이 없군!”


  그녀가 공격에 망설임이 전혀 없다는 부분이다. 소녀는 생각보다도 스쿠알로와의 싸움에 완벽하게 진심을 다했다. 스쿠알로가 조금만 봐줘서 동작이 느려진다면 벌집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특히 스쿠알로의 근접공격에 소녀가 저격총의 반동으로 반격해 빠져나온 부분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장거리에서 이 소녀의 적수는 잔저스나 아르꼬발레노급 이상 정도 밖에 없을 것 같았고, 근접전에서도 금방 무너지는 타입은 아니었다. 소녀는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이런 킬러가 지금까지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못한 게 놀라울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그녀의 박스병기…


  “꽤 허접한 박스 병기인데 활용도도 좋고, 센스가 좋은 인재다.”


  그렇다. 그녀의 박스 병기는 구름속성 꿀벌의 박스 병기인데, 어디 길가에서 주은 프로토타입이라도 되는지 전투 능력이 제로에 가까웠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라곤 벌의 개체수 늘리긴데, 그녀는 군집을 이용해서 9개의 저격총을 자유자재로 공중에서 컨트롤했다. 덕분에 근처 벽이 폭발과 총격으로 엉망이 되긴 했지만, 그만큼 그녀의 높은 화력과 위험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약 2시간 가까이 되는 싸움 동안 벌어진 굉음과 먼지들로 바리아의 동쪽 복도는 엉망이 되었다. 이 엉망을 치울 사람들은 말단 부하들이겠으니 벨 본인이야 신경쓰지 않아도 될 부분이지만…


 “이 꼬맹이는 이제부터 네가 맡아라!”

 “…왜 왕잔데! 개구리도 있잖아!”

 “너 인마! 신입한테 신입을 맡길 수 있겠냐!”


  결국 신입의 뒤치다꺼리는 베이비 간부의 몫이었다. 스쿠알로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는 벨은 투덜대지만, 그래도 개구리 보다는 좀 말을 잘 듣는 듯한 그녀의 성격에 호기심도 간다. 스쿠알로가 그들 전투의 흥분이 사그라들면, 의수의 검을 풀어 내리고 그녀에게 묻는다.


 “일단 수속을 밟기 위한 절차부터 거치고 오지. 애송이, 이름이 뭐냐?”

 “시코 라고 합니다! 대장!”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이 실력으로 왜 숨어있던 거지?”

 “우…일부러 숨어있던 건 아니고, 제가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라서요! 신분이 없습니다!”

 “뭐!?”

 “그래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해 본고레의 도움을 받으러 왔습니다!”

 “…원래 킬러였나?”

 “그런 셈이죠!”

 “공식적으로 말소된 신원에 킬러면 정부 절차를 거치기 힘들긴 하겠군. 따라와”

 “네에! 벨페고르 선배! 저 이제 진짜 후배에요! 나중에 봐요오오~!”


  아니, 왜 그냥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한테, 그것도 하필 날 콕 집어 지목해 굳이 인사를 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조금 귀여워 보이는 건 인정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벨이었다. 그녀가 스쿠알로와 함께 본부로 절차를 밟기 위해 떠나면 벨은 이 난장판이 된 장소를 눈물나게 치우는 부하들의 고통을 지켜보다,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돌려 소란스러웠던 하루를 마무리하러 돌아간다. “시코라고 했나? 흥미롭네..~” 그렇게 벨의 삶에 갑작스러운 뉴페이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이 이야기는, 그의 지루한 겨울의 일상에도 막이 오기 시작하며, 드디어 진정한 봄이 드리우는 날의 동화같은 삶이 찾아오는 시발점이었다.자캐 드림 - 10년 후 벨페고르 드림

  • 원작 완결 기준으로부터 10년 뒤, 평화로운 마피아 세계의 배경. 10대 본고레 보스가 사와다 츠나요시라는 설정.




  이곳은 바리아의 한가로운 오후, 선선한 바람이 부는 3월의 봄이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벨은 스쿠알로의 “할 짓 없으면 서류라도 좀 도와!”라는 말을 무시한 채 바리아 간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도망쳐 나와 성의 복도를 배회하고 있었다. “왕자는 그런 천민들이나 하는 잡일은 하지 않아”라는 말은 덤으로 남겨 스쿠알로의 열을 잔뜩 올리고 낄낄 웃으며 농땡이를 치우러 나온 것이었다. 지나가는 부하 놈 한 명 걸리면 괴롭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오늘의 타겟을 찾던 도중, 벨은 처음 보는 낯선 누군가가 복도에서 어수선하게 두리번거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낡고 꼬질꼬하고 몸 전체를 가리는 검은 전투 슈트를 걸친, 누가 봐도 ‘침입자’로 보이는 수상한 인물. 조금 특이점이 있다면 체격이 상당히 아담하다는 거? 벨은 처음에는 마몬이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걸까 싶었지만, 역시 저 어수선한 행동은 마몬이 할 법한 행동은 아니었다. 벨이 뚜벅뚜벅 걸어가며 그 수상한 인물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 겁도 없이 바리아에 침입한 녀석은 처음인데, 이시싯”


  간단한 물음이었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벨의 냉정함과 살의가 묻어나온다. 갑작스러운 날 선 목소리에 수상한 인물이 벨을 향해 돌아본다.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슈트의 후드 모자를 걷어들며 벨의 얼굴을 확인하는 듯 고개를 까딱이더니, 그 속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소녀의 목소리가 우렁찬 외침으로 튀어나왔다.


“찾았다!”


  바리아에서는 평소에는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이질적인 경쾌한 목소리에 벨은 경계와 시선이 날카로워지지만 또 흥미로운 기분도 들어 고개를 갸웃한다.


  “정체부터 밝혀, 침입자 천민.”


벨의 호기심과 위협이 가득한 대답에 이내 수상한 소녀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후드를 벗고 모습을 드러낸다. 갈색 머리에 갈색 눈, 조금 앳되고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위협적이지는 않은 평범한 얼굴의 소녀는 벨에게 당당하게 반짝이는 눈으로 외친다.


“벨페고르, 절 후배로 받아주세요!”


  벨은 후배라는 단어에 순간 어떤 개구리가 뇌속에서 스쳐지나가 얼굴을 잠깐 찡그린다. 그러나 곧 이 엉뚱한 상황에 재미를 느끼면 금방 입꼬리가 다시 올라간다.

“후배? 그런 짜증나는건 필요없어. 왕자는 사람한테 관심도 없고. 게다가 실력도 없어보이는데… 어떻게 여길 찾아 온거야? 시싯”


벨이 소녀를 얕보자 소녀가 벨의 말에 잠시 곰곰히 고민하다 대답한다.


  “환술 벽으로 막혀있길래 알아챘어요! 바리아에 입단하고 싶습니다!”

  이 바보같이 보이는 소녀가 마몬과 프랑의 환술을 간파했다고? 꽤 놀라운 정보에 벨은 고개를 살짝 들어 소녀를 똑바로 응시한다. 확실히 이 세계는 겉모습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곱씹으며, 낭랑하게 바리아에 입단하고 싶다고 외치는 이 소녀와의 전투를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 해본다.


  “그렇게 들어오고 싶은거야? 우린 오직 실력만 보고 스카웃하는건 알고 왔지? 그러니까 내말은 - ”

  

  벨이 은빛의 나이프를 손으로 펼치며 웃어보인다.


  “살아남으면 네가 원하는대로, 그게 아니면 시체로 나가게 된다는 거야. 이시싯”


  그러나 이런 벨의 위협에도 소녀는 두려운 기색도 없이 오히려 벨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볼을 붉히는 등 전혀 엉뚱하고 이상한 반응을 보이며 중얼거린다.


“확실해… 지금도 내 심장이 두근두근거리잖아!”


  소녀의 중얼거림을 비웃은 벨은 지루하던 하루에 헤프닝이라는 활력을 찾은듯 당장이라도 저 꼬마를 찢어죽이고 싶은 흥분된 마음을 겨우 다스리며 공격의 타이밍을 잰다. 뭐, 고양이도 쥐를 보자마자 죽이진 않잖아?라는 생각처럼 말이다.


  “약해보이는데, 도망치지 않는걸 보니 보기보단 자신이 있나보지? 그 멍청한 얼굴도 곧 일그러질텐데 목숨 구걸이나 해, 천민. 비명도 질러주면 좋고 이시시…”


  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녀를 향해 날카로운 나이프들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간다. 찰나의 순간, 개방된 복도 옆으로 총성이 울리며 날아오는 나이프들이 모두 저격되더니, 나이프와 총알이 모두 벽으로 꺾여 깨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벨의 모든 공격이 무효화 된다.


  “우와. 역시 공격받을 걸 미리 준비해둬서 다행이에요.”


  오- 벨은 이 순간적인 상황에 바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여자, 정말로 입단하고 싶어서 찾아왔나 본데? 하는 생각. 그도 그럴 게 총의 존재를 벨은 처음에 눈치채지 못했다. 다른 말로 하면, 충분히 방금 자신의 나이프가 아니라 머리를 노릴 수도 있었다는 얘기. 게다가 날아오는 나이프를 저격한다고? 아무리 제가 상대를 무시해서 정직하게 던졌어도, 상대는 저격으로는 실력이 있는 게 확실했다. 20년 가까이 되는 히트맨의 삶에서 상대의 전력을 빠르게 파악하는 건 기본 소양이니까, 그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벨이 옆으로 시선을 흘리면 수풀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들이 올라온다. 무기형 박스병긴가 싶었지만, 연기의 본체에 집중해 보면, 벌들의 군집이 저격총을 다수 들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소녀가 벨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재밌네 시싯, 하지만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그렇지, 이런식으로 들어오면 침입자로밖에 인식 못 한다구?”

  “그렇치만 최근 바리아는 스카웃하러 다니지도 않는걸요? 나 저 밖에서 엄청 설레면서 기다렸는데…”

  “그야 요즘은 본고레 보스 때문에 정세가 안정됐으니까, 많은 인원이 굳이 필요가 없나보지, 이시시...”

  

  그나저나 최근 유망세 킬러들 중에 저격수가 있었나? 잠시 머릿속의 프리랜서 킬러들에 대한 소문의 기억을 끄집어 내면…뭐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왕자는 정치에는 관심 없어서 모르겠는 걸~”

  “…왕자면 정치에 더 관심 가져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진짜 왕자는 지루한 일은 하지 않아!”


  일단은 상대가 적의가 전혀 없다는 건 인지했으니, 입단문제야 스쿠알로한테 보내면 그만이라는 생각과 함께 벨은 이 꼬마를 어떻게 하면 재밌게 괴롭히고 놀릴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본다.


  “맞아요! 저 바리아에 들어오려고.. 5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7개 국어 마스터도 하려고 엄청 고생했다구요!”

  

소녀는 주섬주섬 꾸깃꾸깃한 종이들을 꺼낸다.


  “근데 제가 신분때문에 자격증을 딸 수가 없는데 어떻게 증명하죠!?”

  “자격증이라니, 어차피 몇 번 대화하면 알 수 있는데 굳이 필요 없을걸?”

  “…아하!”

  “그냥 바보 천민인가…”


  참 알 수 없는 소녀라는 생각이 드는 벨이었다. 외모로는 일반인 여성보다도 약해 보이는데, 겁도 전혀 없는 데다 무기는 가장 폭력적이고 폭발적인 총기류라니. 어쩌면 재밌는 녀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며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해 보면…역시 아까 소녀의 깔끔한 방어가 잊힐 정도로 빈약하고 어설퍼 보이는 태도를 가진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일단 왕자한테 물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그렇게 입단하고 싶으면 스쿠알로한테 가보지 그래?”

  “바리아의 2인자, 스페르비 스쿠알로씨…맞죠?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저쪽-”

  벨이 소녀에게 스쿠알로의 집무실 방향을 가리켜주면 소녀는 벨에게 미소와 함께 꾸벅 인사를 하고 “나중에 봐요~! 벨페고르 선배!”하고 떠나간다. 선배라니, 아직 바리아 대원도 아니면서 벌써 설레발치는 꼬맹이군 싶은 벨은 아마도 그녀가 스쿠알로 선에서 정리될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전혀 착각이었다. 그날 바리아의 오후는 완전히 개판이 났다.

  

  “우오이!!! 마음에 들었다!!! 스카웃하지!”

  

  이럴수가. 스쿠알로 마음에 드는 경우는 흔치 않지 않나? 벨은 이 광경에 꽤 놀랐다. 잔저스급이나, 루키 멤버로 들어왔던 벨 자신이나 프랑 정도를 제외하곤 첫인상부터 잡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 소녀는 아주 오랜만에 스쿠알로의 전투 심장을 뛰게 만들어버렸다.


  “우와아! 대장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별이라도 쏘는 듯 반짝이는 눈으로 충성하는 꼬맹이라니, 정말 웃기다.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그냥 간단하다. 스쿠알로가 입단을 원한다면 전력으로 싸워보라고 했고, 결과적으로는 이 소녀의 굉장한 실력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스쿠알로의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바로-


  “너, 살인에 전혀 두려움이 없군!”


  그녀가 공격에 망설임이 전혀 없다는 부분이다. 소녀는 생각보다도 스쿠알로와의 싸움에 완벽하게 진심을 다했다. 스쿠알로가 조금만 봐줘서 동작이 느려진다면 벌집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특히 스쿠알로의 근접공격에 소녀가 저격총의 반동으로 반격해 빠져나온 부분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장거리에서 이 소녀의 적수는 잔저스나 아르꼬발레노급 이상 정도 밖에 없을 것 같았고, 근접전에서도 금방 무너지는 타입은 아니었다. 소녀는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이런 킬러가 지금까지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못한 게 놀라울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그녀의 박스병기…


  “꽤 허접한 박스 병기인데 활용도도 좋고, 센스가 좋은 인재다.”


  그렇다. 그녀의 박스 병기는 구름속성 꿀벌의 박스 병기인데, 어디 길가에서 주은 프로토타입이라도 되는지 전투 능력이 제로에 가까웠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라곤 벌의 개체수 늘리긴데, 그녀는 군집을 이용해서 9개의 저격총을 자유자재로 공중에서 컨트롤했다. 덕분에 근처 벽이 폭발과 총격으로 엉망이 되긴 했지만, 그만큼 그녀의 높은 화력과 위험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약 2시간 가까이 되는 싸움 동안 벌어진 굉음과 먼지들로 바리아의 동쪽 복도는 엉망이 되었다. 이 엉망을 치울 사람들은 말단 부하들이겠으니 벨 본인이야 신경쓰지 않아도 될 부분이지만…


 “이 꼬맹이는 이제부터 네가 맡아라!”

 “…왜 왕잔데! 개구리도 있잖아!”

 “너 인마! 신입한테 신입을 맡길 수 있겠냐!”


  결국 신입의 뒤치다꺼리는 베이비 간부의 몫이었다. 스쿠알로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는 벨은 투덜대지만, 그래도 개구리 보다는 좀 말을 잘 듣는 듯한 그녀의 성격에 호기심도 간다. 스쿠알로가 그들 전투의 흥분이 사그라들면, 의수의 검을 풀어 내리고 그녀에게 묻는다.


 “일단 수속을 밟기 위한 절차부터 거치고 오지. 애송이, 이름이 뭐냐?”

 “시코 라고 합니다! 대장!”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이 실력으로 왜 숨어있던 거지?”

 “우…일부러 숨어있던 건 아니고, 제가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라서요! 신분이 없습니다!”

 “뭐!?”

 “그래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해 본고레의 도움을 받으러 왔습니다!”

 “…원래 킬러였나?”

 “그런 셈이죠!”

 “공식적으로 말소된 신원에 킬러면 정부 절차를 거치기 힘들긴 하겠군. 따라와”

 “네에! 벨페고르 선배! 저 이제 진짜 후배에요! 나중에 봐요오오~!”


  아니, 왜 그냥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한테, 그것도 하필 날 콕 집어 지목해 굳이 인사를 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조금 귀여워 보이는 건 인정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벨이었다. 그녀가 스쿠알로와 함께 본부로 절차를 밟기 위해 떠나면 벨은 이 난장판이 된 장소를 눈물나게 치우는 부하들의 고통을 지켜보다,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돌려 소란스러웠던 하루를 마무리하러 돌아간다. “시코라고 했나? 흥미롭네..~” 그렇게 벨의 삶에 갑작스러운 뉴페이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이 이야기는, 그의 지루한 겨울의 일상에도 막이 오기 시작하며, 드디어 진정한 봄이 드리우는 날의 동화같은 삶이 찾아오는 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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